잿빛 새벽, 여의도 증권가의 불빛은 언제나처럼 꺼지지 않았다. 낡은 코트깃을 세운 채 택시에서 내린 김 부장은 뻐근한 목을 풀며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 공기는 매캐한 담배 연기와 눅눅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며칠째 이어진 폭락, 검은 파도는 주식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었고, 그의 밤은 숫자로 가득 찬 악몽으로 물들었다. 붉은색으로 점철된 모니터 화면은 마치 핏빛 바다 같았다.
그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암호화폐 시장은 이미 초토화되었고, 불안정한 유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 환율마저 예측 불허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김 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단지 파도를 막아보려 애쓰는 낡은 둑방에 불과했다. 거대한 파도는 그의 모든 노력을 비웃듯 맹렬하게 몰아쳐 왔다. 그는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때 그의 자부심이었던 날카로운 분석과 예측은 이제 무너져가는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