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26년 04월 01일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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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석사 논문 주제는 부동산과 국제유가였다. 당시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내 안에는 강한 직감이 있었다. 전후 자본주의가 구사해온 유례없는 호황은 영원할 수 없으며, 그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은 이미 역사 속에 박제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68혁명과 오일쇼크, 그리고 금의 굴레를 벗어던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그 혼돈의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성장이 멈춘 시대에 물가만 치솟는 기이한 공포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결국 모든 문제의 본질은 단순했다. 에너지,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였다.

2008년,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시절 국제유가는 무자비하게 폭등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거품이 터졌다. 이듬해 논문을 마무리할 때쯤 사람들의 시선에서 유가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모두가 눈앞의 아파트값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 나는 유가가 흔드는 세계의 근간을 보았다.

시간이 흘러 2026년, 전쟁의 포화와 함께 유가는 다시 꿈동거린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을 말한다. 셰일 혁명이 오일쇼크의 시대를 끝냈다고 믿었던 낙관론은 무너지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의 균열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저성장과 고물가의 늪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그 사이 기술은 또 다른 칼날을 갈고 있었다. AI 혁신은 명백한 '창조적 파괴'다. 처음엔 편리함에 환호했지만, 이제는 서늘한 감각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의 존재 이유가 희미해지고, 보안 프로그램마저 알고리즘이 스스로 짜 내려가는 광경을 목도한다. 생산성의 비약적인 향상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리를 지워나간다. 기술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기보다, 생존을 위한 더 처절한 속도전으로 내몰고 있다.

전쟁의 양상 또한 비정해졌다. SF 영화 속 살상 무기들이 현실의 전장에 등장하고, 인간은 기술을 연마해 동종의 숨통을 끊는 기계를 만든다. 에너지 시설이 정밀 타격의 대상이 되고 물류망이 마비되는 사이, 남은 이들은 모니터 속 주식 계좌를 보며 전쟁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시스템의 모순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전에, 인간이 먼저 기술과 전쟁으로 스스로의 토대를 허물고 있는 형국이다.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유가 상승은 단순한 비용 부담을 넘어 생존의 위협이다. 물류비용의 폭발적 증가는 고스란히 우리 경제의 짐이 된다. 여기에 반도체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까지 가세한다면, 우리를 지탱하던 주력 산업의 기둥조차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지는 나라,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가혹한 성적표다.

에너지, 기술, 인구. 모든 변수가 한꺼번에 우리를 압박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미래가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이미 불가능해 보이던 반전을 일구어낸 경험이 있다. 자원 하나 없는 이 작은 나라가 전 세계 젊은이들이 동경하고 찾아오고 싶어 하는 땅이 될 줄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미래는 단순히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유와 실천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 아직은 나아갈 시간이 남아 있다고.  창조적 파괴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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