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경계인: 일론 머스크

찰리 · 2026년 01월 18일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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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론 머스크를 생각할 때 보통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나는 화성 이주를 꿈꾸며 전기차 혁명을 이끄는 '천재적인 비전가'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괴짜 억만장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이름 뒤에 조금 낯설고 불편한 물음표 하나가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그는 인종주의자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위태로운 경계인: 일론 머스크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를 단순히 '그렇다' 혹은 '아니다'로 규정하기에는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가 가진 철학이 꽤나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X'로 이름을 바꿨을 때, 그가 가장 강조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였습니다. 그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검열 없이 말할 수 있는 광장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무제한의 자유'가 가져온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동안 혐오 발언으로 제재를 받았던 이들이 대거 복귀했고, 그 틈바구니에서 인종차별적인 주장들도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니까요.
특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건, 그가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적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댓글을 남겼던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머스크는 나중에 그것이 오해였다고 해명했고,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그가 '악의적인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위험한 줄타기'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가 이끄는 테슬라 공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도 이 복잡한 퍼즐의 한 조각입니다. 캘리포니아 공장에서는 흑인 직원들이 차별을 겪었다는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머스크의 반응은 다소 독특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거친 농담도 받아넘길 수 있는 '두꺼운 피부'를 가질 것을 주문했죠. 어쩌면 그는 효율과 성과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공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느라,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사회적 맥락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맹점'을 가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아마도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워크(Woke, 깨어있는 척하는 태도)' 문화일 것입니다. 머스크는 인위적인 다양성 정책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오히려 능력주의를 해치고 역차별을 낳는다고 굳게 믿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는 종종 반(反)차별 운동에 날 선 비판을 가하곤 하는데, 이런 그의 신념이 때로는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공정한 경쟁'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기득권의 옹호'로 읽히는 셈입니다.
결국 일론 머스크가 마음속 깊이 누군가를 혐오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피부색보다는 '코딩 능력'이나 '엔지니어링 실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철저한 능력주의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의 거대한 영향력이 때로는 혐오가 자라나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그의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자유로 변질되고, 능력주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기에 일론 머스크는 여전히 판단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차별을 조장하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기술과 플랫폼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조금은 무심하거나 서툰, **'위태로운 경계인'**에 가까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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