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전쟁의 서막인가: 덴마크 연기금의 '미국 손절'이 던진 경고
덴마크의 주요 연기금이 미국 국채를 전량 매각하겠다고 선언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에 심상치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투자 포트폴리오의 조정을 넘어, 오랜 동맹국이었던 유럽의 자본이 미국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이른바 ‘자본 전쟁(Capital War)’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건의 중심에 선 곳은 덴마크의 학술인 연기금인 '아카데미커펜션'입니다. 이들은 보유 중인 약 1억 달러(한화 약 1,470억 원) 규모의 미국 국채를 이달 말까지 전량 처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안데르스 셸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매각의 이유로 미국의 재정 상태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과도한 지출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로 인해, 미국이 더 이상 안정적인 자산 관리처가 아니라는 냉정한 경제적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번 매각 결정의 이면에 깔린 정치적 갈등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셸데 CIO 스스로도 "최근의 갈등 상황이 매각 결정을 내리는 것을 심리적으로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갈등이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매입을 시도하다 거절당하자, 유럽 국가들에 대해 최대 25%의 보복 관세를 위협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월가 기준으로는 1억 달러가 소액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는 덴마크의 자부심인 그린란드를 건드린 것에 대한 ‘바이킹 후예’들의 첫 번째 실력 행사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더 큰 우려는 이러한 움직임이 덴마크에서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지난해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며 명분은 쌓여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세계 최대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나 네덜란드 연금 등 유럽의 '큰 손'들이 동맹국에 대한 신뢰 상실을 이유로 미국 국채 이탈 행렬에 동참한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자본의 무기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브리지워터의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 역시 다보스 포럼에서 현 상황을 매우 위험하게 진단했습니다. 그는 "무역 전쟁과 적자의 이면에는 결국 '자본 전쟁'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하며,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지 않게 될 때 누구도 미국의 부채를 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진 날 뉴욕 시장에서는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달러화와 증시가 동반 하락하는 전형적인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장세가 연출되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안전 자산인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연기금의 이번 결정은 굳건해 보이던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에 '신뢰'라는 가장 근본적인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